한때 유라시아 전역 2,400만 제곱km를 손에 쥐었던 몽골 제국이 지금은 왜 이토록 작아졌을지 궁금하실겁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단순히 '강한 나라가 약해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구조적인 문제가 처음부터 내재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이후로 몽골이라는 나라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말 위에서 세운 몽골 제국, 그 시작은 어땠을까친구가 몽골 여행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제가 처음 느낀 건 역사적 감동이 아니라 그냥 '넓다, 시원하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광활한 초원 위에 세워진 게르(ger), 즉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이동식 천막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 평원에 한번 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소련은 전쟁에서 진 게 아닙니다. 회계 장부가 먼저 무너졌습니다. 1991년 12월 크렘린에서 붉은 깃발이 내려오던 그 밤, 세계는 이념의 패배를 봤다고 했지만, 저는 이 사건을 들여다볼수록 그보다 훨씬 냉정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슈퍼파워가 총 한 방 맞지 않고 스스로 문을 닫은 이유, 그 답은 미사일 격납고가 아니라 국가의 통장 잔액에 있었습니다.소련 붕괴의 원인, 자원 의존의 함정할머니께서 소련이 무너지기 전에 직접 다녀오셨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가끔 들었습니다. "지금 러시아보다 훨씬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다"는 말씀이었는데, 저는 그 분위기가 단순히 공산주의 체제의 권위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서서히 내부에서 곪아가던 재정 불안 탓도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강한 나라가 항상 전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1894년 당시 세계 최강 해군을 보유했다는 청나라가 신흥국 일본에게 완패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이 전쟁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꽤 오래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병력도, 함선 덩치도 청나라가 압도적이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그 의문점에서 출발해서 청일전쟁 전체 흐름을 다시 짚어봤습니다.탈아론, 청일전쟁 전에 이미 마인드셋이 달랐다청일전쟁을 이해하려면 사실 전쟁보다 훨씬 앞선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로 탈아론(脫亞論)이 등장한 시점입니다. 여기서 탈아론이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화된 근대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일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처음 제기한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아시아가 아니라..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전쟁 기간 동안 총 5,800억 달러(현재 가치 기준)를 쏟아부었지만 결국 패퇴했습니다. 세계 최강 군사력이 왜 작은 나라 하나를 이기지 못했는지, 저도 오랫동안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러다 나트랑 여행에서 그 잔잔한 바다를 보고서야 이 전쟁이 단순한 군사력의 싸움이 아니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습니다.도미노 이론이 만들어낸 베트남전쟁의 씨앗도미노 이론(Domino Theory)은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인접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공산화된다는 냉전 시대의 외교 안보 논리입니다. 쉽게 말해, 도미노 블록 하나가 쓰러지면 나머지도 줄줄이 쓰러진다는 개념으로, 이 이론이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한 핵심 명분이었습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미국은 아시아 전체가 ..
솔직히 저는 뉴질랜드를 그냥 "호주 옆에 있는 작은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문화도 비슷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류가 가장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땅, 불과 800년의 역사 안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압축돼 있을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입니다.뉴질랜드 마오리족 역사, 별을 읽으며 세운 문명뉴질랜드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멈칫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고작 1250년에서 1300년 사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슷한 면적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이 먼 곳까지 닿을 수 있었을까요?폴리네시아 항해사들은 GPS도, 나침반도 ..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두바이에서 살다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꽤 부유한 집안이었고, 반 아이들 사이에서 별명이 '두바이 왕자'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진짜 궁금해졌습니다. 면적은 한국 경기도만 하고, 인구는 수백만 명에 불과한 나라가 어떻게 세계 최고 부국이 될 수 있었을까 말입니다. 걸프만의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 네 나라의 생존 방정식을 파고들다 보면, 단순히 "석유가 나왔으니 부자가 됐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 답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걸프만 소국 역사 - 영국 보호령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경계선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이 나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 소국들이..
솔직히 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그냥 "석유 부자 나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옴시티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면적 214만 km²에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16%를 품은 이 나라가, 지금 석유 없이도 살아남을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경제: 오일머니의 명암과 아람코의 도박처음 사우디아라비아 경제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좀 아찔했습니다. 하루 석유 생산량이 약 1,000만 배럴, 전 세계 매장량의 16%를 혼자 틀어쥐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노동자의 약 80%가 외국인이고, 자동차부터 IT 제품까지 대부분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화려한 숫자 뒤에 구조적..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를 향해 미사일을 날리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 두 나라, 원래는 30년 넘게 친구였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될지 말입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을 지나는 테헤란로를 볼 때마다 이란이라는 나라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정작 그 나라의 현대사를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출발점부터 다시 정리해봤습니다.이란과 이스라엘 30년 우정 — 생존 계산에서 시작된 동맹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언하자마자 사방이 막혔습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국가 전체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석유조차 팔지 말라는 아랍권의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꺼낸 전략이..
솔직히 저는 걸프전을 그냥 '미국이 이라크를 이긴 전쟁'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TV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화면 가득 터지는 폭발과 빠른 전황 보도가 인상적이었던 기억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이 전쟁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현대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어떻게 새로 썼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건이었습니다.미국 군사력, 왜 이 걸프전이 필요했나미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에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수복한 북한 지역을 내줬고, 베트남전에서는 천문학적인 돈과 병력을 퍼부었음에도 결국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 두 번의 경험은 '미국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있다'는 의심을 전 세..
강했던 제국의 역사를 스스로 지워버린 나라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오스만 제국이라는 그 압도적인 역사를 왜 튀르키예가 부정했는지, 제가 튀르키예를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으면서도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국 과정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게 버린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튀르키예 건국 이전 오스만 제국은 왜 스스로 무너졌는가중국 이전의 청나라, 인도 이전의 무굴 제국, 이란 이전의 카자르 왕조. 이 대제국들은 근대의 수난을 버텨내고 결국 지역 강국으로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이 라인업에서 오스만 제국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계승 국가인 튀르키예가 건국되는 순간부터 오스만과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