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 (30년 우정, 혁명, 대리전쟁)

historypahk 2026. 8. 13. 23:00

목차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를 향해 미사일을 날리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 두 나라, 원래는 30년 넘게 친구였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될지 말입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을 지나는 테헤란로를 볼 때마다 이란이라는 나라가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정작 그 나라의 현대사를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출발점부터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 30년 우정 — 생존 계산에서 시작된 동맹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언하자마자 사방이 막혔습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국가 전체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석유조차 팔지 말라는 아랍권의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꺼낸 전략이 바로 주변부 동맹론(Peripheral Alliance Doctrine)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변부 동맹론이란, 아랍 국가들에게 포위된 이스라엘이 아랍이 아닌 비(非)아랍 국가들과 먼저 손을 잡아 포위망을 뚫겠다는 지정학적 구상입니다.

    이란이 딱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란인은 아랍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으로, 민족도 언어도 다릅니다. 당시 이란을 통치하던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북쪽에서 소련이 압박해오고, 이라크와의 관계도 험악한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연결되는 고리가 필요했는데, 이스라엘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협력은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쓰는 석유의 60%가 이란에서 왔고, 아랍의 눈을 피해 홍해 항구 에일라트에서 지중해 항구 아슈켈론까지 비밀 파이프라인을 깔았습니다. 군사·정보 분야에서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이란의 비밀경찰 사바크(SAVAK) 훈련을 담당했습니다. 여기서 모사드란 이스라엘 해외 정보 수집 및 공작을 전담하는 국가정보기관을 말하고, 사바크란 팔라비 왕조 시절 이란의 비밀경찰로 반정부 세력을 감시하고 탄압하던 조직입니다. 테헤란에는 이스라엘 가족이 500세대 넘게 살았고, 텔아비브와 테헤란을 잇는 직항편도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 석유 수입의 약 60%를 이란이 공급 (비밀 파이프라인 운영)
    • 모사드가 이란 비밀경찰 사바크 창설·훈련에 직접 관여
    • 테헤란에 이스라엘 가족 500세대 이상 거주, 히브리어 학교 운영
    • 텔아비브↔테헤란 직항 항공편 정기 운항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 미사일이 오가는 두 나라 사이에 이런 일상이 있었다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이란은 늘 전쟁과 제재 뉴스 속에 있는 나라였는데, 그 전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이 우정이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오히려 더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약: 이스라엘과 이란의 30년 동맹은 감정이 아닌 생존 계산에서 시작됐으며, 석유·정보·군사 협력이 일상 깊숙이 얽혀 있었다.

     

    혁명 — 일주일 만에 끝난 30년 우정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Iranian Islamic Revolution)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여기서 이슬람 혁명이란, 팔라비 왕조의 친미 노선에 반발한 이란 국민이 이슬람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신정 공화국을 세운 사건입니다. 샤 팔라비가 망명길에 오르고, 호메이니가 파리에서 테헤란행 비행기에 오른 날 공항에는 수백만 명이 몰렸습니다. 차가 움직이질 못해 결국 헬기로 이동해야 했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자마자 한 일 중 하나가 이스라엘을 '작은 악마'로 규정하고 단교를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폐쇄됐고 건물 열쇠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넘어갔습니다. 혁명 여섯째 날, PLO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테헤란에 나타나 군중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들었습니다. 30년 우정이 일주일도 안 돼 공식적으로 끝난 장면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호메이니에게 이스라엘은 미국과 한 묶음이었습니다. 팔라비 시절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석유 이권을 넘겨주던 기억이 혁명의 연료였고, 이스라엘은 그 미국의 중동 파트너로 여겨졌습니다. 반이스라엘 노선을 취하는 것이 곧 중동 전체 무슬림들에게 '우리가 여러분 편'이라고 외치는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대목이 나옵니다. 혁명 직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자, 이란은 미국제 무기 부품을 몰래 이스라엘에서 조달했습니다. 입으로는 없애겠다고 외치면서 뒤로는 거래를 한 겁니다. 이란 북쪽 비밀기지에 이스라엘 군사 기술자 100명 이상이 상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외교협회(CFR)). 겉으로는 원수, 뒤로는 거래. 이게 중동 외교의 민낯이었습니다.

    요약: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이스라엘 관계는 공식 단절됐지만,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는 비밀 무기 거래가 이어지는 이중적 구도가 펼쳐졌다.

     

    대리전쟁 — 헤즈볼라, 하마스, 그리고 직접 충돌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후계자 알리 하메네이는 반이스라엘 노선을 한층 더 강하게 밀었습니다. 이 시기 이란이 본격적으로 구축한 것이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라 불리는 대리 세력 네트워크였습니다. 저항의 축이란, 이란이 직접 개입하는 대신 중동 각지의 무장 단체를 후원·훈련해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도록 하는 이란의 지역 전략 구도를 말합니다.

    그 핵심이 헤즈볼라(Hezbollah)와 하마스(Hamas)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이란이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들을 규합해 만든 무장 단체입니다. 이스라엘 바로 북쪽 국경에 이란의 대리인이 자리 잡은 셈이었습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장악한 무장 단체로, 이란이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온 또 다른 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북쪽에 헤즈볼라, 남쪽에 하마스, 그 뒤에 이란이 버티고 있는 구도였습니다.

    제가 직접 뉴스를 챙겨보면서 느낀 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상황이 너무 빠르게 커졌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하자 북쪽에서 헤즈볼라가 로켓을 쐈고, 2024년에는 이란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과 드론을 직접 날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대리인을 통해 싸우던 두 나라가 처음으로 정면으로 맞붙은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BBC 중동 분쟁 보도에서도 이 구도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이란이 만약 계속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로 남았다면 중동 지도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란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노선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 가장 불안한 요소로 보입니다. 하메네이 사후 이란의 방향이 어디로 쏠릴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다시 어떻게 재편될지가 지금 중동 정세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중동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요약: 이란은 헤즈볼라·하마스라는 대리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압박했고, 2024년 처음으로 본토 직접 공격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란과 이스라엘은 왜 원래 친했던 건가요?

    A. 종교나 문화적 유대가 아니라 순전히 생존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 포위망을 뚫기 위해 비아랍 국가인 이란에 손을 내밀었고, 이란은 소련 위협에 맞서 미국과 연결되는 고리로 이스라엘을 활용했습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동안 두 나라는 석유·군사·정보 분야에서 깊이 엮여 있었습니다.

     

    Q. 이란 혁명이 왜 이스라엘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줬나요?

    A.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들어선 호메이니 정권은 친미 노선 자체를 적으로 규정했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파트너로 인식됐습니다. 반이스라엘 노선이 곧 중동 무슬림 전체에게 혁명의 정당성을 외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됐기 때문에, 단교는 이념적으로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Q. 헤즈볼라랑 하마스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A.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무장 단체로, 1982년 이란이 직접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장악한 수니파 무장 단체로, 이란이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는 후원 관계입니다. 둘 다 이란의 '저항의 축' 네트워크에 속하지만 종파와 설립 경위가 다릅니다.

     

    Q.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게 역사상 처음인가요?

    A. 그렇습니다. 2024년 이전까지 이란은 헤즈볼라·하마스 같은 대리 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해왔습니다. 2024년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을 이스라엘 본토에 직접 발사한 것은 수십 년 이란-이스라엘 갈등 역사에서 처음 있는 정면 충돌이었습니다.

     

    결론

    이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중동에서 어떤 나라가 누구 편이냐는 질문은 사실 그 순간의 이해관계를 묻는 질문이라는 겁니다. 70년 전 이스라엘의 친구가 이란이었다면,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입니다. 1979년 이전 이란의 파트너가 이스라엘이었다면, 지금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입니다. 선수만 바뀌었을 뿐 게임의 논리는 같습니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지날 때마다 한국과 이란이 꽤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실감됩니다.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는 어떤 모습일지, 페르시아 시절 유적들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이란 방문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란 정세가 안정된다면 그때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날아다니는 미사일 너머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읽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U28_QKtz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