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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같은 반도 안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고, 언어도 문화도 비슷해 보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냥 붙어 있는 나라들"이라는 막연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두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지금 이 국경선이 얼마나 치열하게 지켜진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건국 - 포르투갈이 독립 국가가 된 역사적 배경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지금까지 별개의 나라로 존재한다는 사실,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두 나라가 한때는 하나였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정반대였습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독자적인 왕국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야기는 11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포르투갈 지역은 레온 왕국의 변방에 속한 작은 백작령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국토 회복 운동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최전선 중 하나였는데, 레콩키스타란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700년에 걸쳐 이베리아반도의 기독교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역사적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앙리 백작은 변방을 지키며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조금씩 다져나갔습니다.
이후 앙리 백작의 아들인 아폰수 엔리크스가 뒤를 이었고, 어머니와의 권력 다툼 끝에 1128년 상마메드 전투에서 승리하며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건, 어머니를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 권력 다툼이 혈연도 가리지 않을 만큼 치열했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아폰수 1세는 레온 왕국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당시 유럽 최고의 권위자인 교황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1143년 레온 왕국과의 조약으로 독립적 지위를 먼저 확보한 뒤,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칙서를 통해 마침내 공식적인 국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교황의 승인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포르투갈이 기독교 세계에서 정식 왕국으로 공인받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은 내부 결속과 영토 확장에 속도를 높였고, 1249년 이베리아반도 남단 알가르브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1297년 카스티야 왕국과 맺은 조약으로 양국 간 국경선이 공식 확정되었는데, 이때 그어진 선이 현재까지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출처: 유럽의회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이 국경은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국경선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1128년 상마메드 전투: 아폰수 엔리크스가 실권 장악, 독립 노선 본격화
- 1143년 레온 왕국과 조약: 포르투갈의 독립적 지위 확보
-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 칙서: 포르투갈 왕국 공식 승인
- 1249년 알가르브 완전 수복: 이베리아반도 내 영토 확장 마무리
- 1297년 카스티야와 국경 조약: 현재까지 이어지는 국경선 확정
이베리아 연합과 왕정복고
포르투갈이 독립을 지키는 과정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두 번 있었습니다. 두 번 모두 원인이 같았습니다. 왕가의 대가 끊겨 카스티야 왕국, 즉 스페인의 전신이 왕위 계승을 명분으로 포르투갈을 흡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또 같은 이유로 터지네"였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1383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며 찾아왔습니다. 그의 딸 베아트리스가 카스티야의 후안 1세와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안 1세는 아내의 권리를 앞세워 포르투갈 왕위를 요구했습니다. 카스티야 입장에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리스본의 상인·귀족·성직자·민병대 등 포르투갈 사회 전반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주앙을 새 국왕으로 추대하고 1385년 알주바로타 전투에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카스티야 군대를 완벽하게 격파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전 승리는 단순한 군사력 차이가 아니라 명분과 의지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걸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승리 이후 포르투갈은 1386년 잉글랜드와 윈저 조약(Treaty of Windsor)을 체결했습니다. 윈저 조약이란 포르투갈과 잉글랜드가 맺은 군사 동맹 조약으로, 세계 역사상 현재까지 유효한 조약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동맹은 카스티야가 포르투갈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막는 강력한 외교적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1578년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이 북아프리카 원정에서 후사 없이 전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추기경 엔리케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며 아비스 왕조(House of Aviz)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아비스 왕조란 1385년 주앙 1세부터 시작된 포르투갈의 왕조로, 대항해 시대를 이끈 왕가이기도 합니다. 이 공백을 놓치지 않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포르투갈 공주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1580년 포르투갈 왕위에 올랐고, 그렇게 이베리아 연합(Iberian Union)이 성립되었습니다.
솔직히 이 두 번째 위기는 첫 번째와 달리 결과가 달랐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엔 맹렬하게 싸워 이겨냈는데, 두 번째엔 귀족들의 협상 끝에 결국 스페인 국왕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말았을 것 입니다. 만약 그때도 포르투갈이 끝까지 반발해 이베리아 연합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후 28년에 걸친 왕정복고 전쟁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베리아 연합은 시작부터 불안했습니다.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고유한 법·제도·해외 식민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스페인의 적이 곧 포르투갈의 적이 되어버리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포르투갈이 전 세계에 구축한 해외 식민지들은 스페인의 적대국들에게 공격받았고, 포르투갈은 자신들과 무관한 스페인의 패권 전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거기에 세금과 군사 지원 요구까지 더해지자 1640년 포르투갈의 독립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고, 포르투갈 왕정복고 전쟁(Portuguese Restoration War)이 시작되었습니다. 왕정복고 전쟁이란 포르투갈이 이베리아 연합에서 벗어나 왕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벌인 28년간의 독립 전쟁을 뜻합니다.
당시 국제 정세도 포르투갈 편이었습니다. 스페인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여력이 없었고, 1661년 포르투갈의 카타리나 공주가 잉글랜드 국왕 찰스 2세와 결혼하며 잉글랜드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확보했습니다.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결혼을 통해 포르투갈은 잉글랜드에 봄베이(현 뭄바이)와 탕헤르를 지참금으로 건넸고,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의 주권 회복을 군사·외교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결국 1668년 리스본 조약으로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왜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지 않았나요?
A. 포르투갈은 스페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독립 왕국으로 자리를 잡았고, 1385년 알주바로타 전투 승리와 잉글랜드와의 윈저 조약을 통해 카스티야의 흡수 시도를 막아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는 두 나라가 각자 다른 바다로 뻗어나가면서 굳이 합칠 이유도 없어졌고, 1640년 왕정복고 전쟁을 거쳐 포르투갈은 완전히 독립 국가로 복귀했습니다.
Q. 이베리아 연합이란 무엇인가요?
A. 1580년부터 1668년까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국왕을 겸하면서 이베리아반도의 두 왕국이 하나의 왕관 아래 놓였던 시기를 이베리아 연합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통합은 아니었고 포르투갈의 법과 식민지는 별도로 유지되었지만, 스페인의 적이 포르투갈의 적이 되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결국 포르투갈의 독립 반란으로 해체되었습니다.
Q. 포르투갈과 잉글랜드는 왜 동맹을 맺었나요?
A. 1386년 윈저 조약을 통해 맺어진 이 동맹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포르투갈은 카스티야를 견제할 강력한 외부 동맹이 필요했고,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에서 카스티야와 손잡은 프랑스를 압박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필요했습니다. 이 조약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 조약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Q.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를 나눠 가진 이유는 뭔가요?
A. 대항해 시대에 두 나라가 전 세계 항로와 식민지를 두고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15~16세기 교황의 중재 아래 지구를 반씩 나눠 각자의 영역에서 탐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결과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을 차지하는 방향으로 나뉘었고, 두 나라는 좁은 반도 안에서 싸울 이유가 더 줄어들었습니다.
결론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처럼 보이지만, 그 국경선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백 년에 걸친 전쟁과 외교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레콩키스타의 최전선에서 독립 왕국을 세우고, 교황의 승인을 받고, 카스티야의 흡수 시도를 두 차례 막아내고, 이베리아 연합에서 28년 싸워 다시 독립을 찾아낸 역사는 단순히 "작은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포르투갈이 이베리아 연합에서 빠져나온 왕정복고 전쟁이었습니다. 처음에 연합을 막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60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고 독립을 되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포르투갈은 역사가 깊은 만큼 여행지로서도 매력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까운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역사적 배경을 알고 포르투갈을 바라보면, 리스본의 거리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포르투갈의 역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대항해 시대와 엔히크 왕자 이야기로 이어서 공부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