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파라과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루과이랑 항상 헷갈렸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처참한 피해를 남긴 전쟁 중 하나가 파라과이에서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름도 비슷한 두 나라가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 파라과이의 역사를 파고들수록 단순한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부패가 한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3국전쟁 - 파라과이를 바꿔버린 분기점

제가 파라과이 역사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독립 직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오랜 혼란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파라과이는 달랐습니다. 1811년 독립 이후 오히려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고, 당대 남미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초대 독재자 프란시아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독재자라고 하면 흔히 서민을 착취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인물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제가 파고들어 보니 프란시아는 꽤 결이 달랐습니다. 그는 귀족과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하고, 몰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싼값에 임대했습니다. 심지어 의회가 책정한 대통령 급여도 스스로 깎아서 받았다고 합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파라과이의 세금은 외국 자본가, 식민지 정부, 인근 부에노스아이레스 총독부, 스페인 본국에 이르기까지 중층적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였는데, 독립 이후 이 착취 구조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도 성장에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1864년, 파라과이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 전쟁이 시작됩니다. 바로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연합군 대 파라과이가 맞붙은 삼국동맹전쟁, 흔히 '3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입니다. 삼국동맹전쟁(War of the Triple Alliance)이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세 나라가 동맹을 맺고 파라과이를 상대로 벌인 남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을 말합니다.

제가 이 전쟁에서 특히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지점은 우루과이의 태도였습니다. 원래 파라과이의 독재자 솔라노 로페스와 동맹이었던 우루과이 정부가 전쟁 도중 정권이 교체되면서 갑자기 브라질·아르헨티나 편으로 돌아서 버린 겁니다. 만약 우루과이 정부가 바뀌지 않고 파라과이와 끝까지 함께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궁금합니다. 아마 쉽게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파라과이가 이렇게까지 처참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6년간의 전쟁 끝에 파라과이는 국토의 30%를 잃었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인구 피해였습니다.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르긴 하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에서 최대 60%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전쟁에 나간 남성 인력이 사실상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이후 1870년부터 1954년까지 84년 동안 무려 44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극단적인 정치 불안이 이어졌습니다.

  • 파라과이는 독립 직후 남미 최선진국으로 꼽혔으나 3국전쟁으로 국토 30% 상실
  • 전쟁 사망자는 전체 인구의 최대 60% 이상으로 추정 (학자별 이견 있음)
  • 전후 84년간 44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극심한 정치 혼란 지속
  • 동맹이었던 우루과이가 전쟁 중 정권 교체로 파라과이의 적으로 돌아선 것도 패인 중 하나
요약: 파라과이는 독립 직후 성장하던 나라였으나 3국전쟁으로 국토·인구·경제 기반을 동시에 잃으며 이후 부패 구조가 뿌리내릴 토양이 만들어졌다.

 

부패구조 - 사회 전체를 삼킨 과정, 그리고 청렴지수의 현재

일반적으로 부패가 심한 나라는 처음부터 나쁜 제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파라과이를 공부하면서 제 생각은 좀 달라졌습니다. 부패는 특정한 계기로 구조화되고, 한번 자리 잡으면 세대를 넘어 전이된다는 걸 파라과이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3국전쟁 이후 혼란이 이어지던 파라과이에서 1954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권력을 잡습니다. 그는 1989년까지 무려 35년을 집권했는데, 이 시기가 파라과이 부패 구조의 결정적 기원이 됩니다.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택한 방법이 부패의 제도화였습니다. 군대가 밀무역으로 돈을 버는 것을 눈감아주면서 1965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를 대놓고 "평화를 위한 대가"라고 표현했습니다. 군인들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뒷돈을 벌게 해준다는 논리였는데,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말 그대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부패 제도화의 피해는 수치로 확인됩니다. 출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란 공공 부문의 부패를 100점 만점으로 측정하는 지표로, 점수가 높을수록 청렴합니다. 2021년 기준 파라과이는 180개국 중 128위였고, 같은 대륙의 우루과이는 18위였습니다. 대한민국이 32위인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됩니다.

스트로에스네르가 35년 집권 기간 동안 자기 세력에게 나눠준 토지는 67,440㎢로, 이는 파라과이 전체 국토의 16.6%, 전체 농지의 28.1%에 해당합니다. 이 토지 불평등은 현재까지 이어져 2016년 기준 파라과이 전체 토지의 71%를 상위 1%의 대지주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역사 속 결정 하나가 수십 년 뒤 사회 구조를 이렇게까지 규정하는 사례는 보기 드문 편인데, 파라과이는 그 극단적인 예였습니다.

부패 비용을 수치로 환산한 연구도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5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010년 기준 파라과이의 뇌물 갈취로 발생하는 부패 비용이 국가 GDP의 2.4%에 달했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우루과이의 수치는 0.03%였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4%라는 수치가 얼마나 큰지 와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비교하자면, 2021년 한국 GDP 약 2,000조 원의 2.4%는 48조 원입니다.

또한 파라과이 경제분석 및 보급센터 CADEP에 따르면 2012년 한 해에만 징수 대상 세금의 31%가 탈세됐고, 같은 해 밀무역 규모는 공식 수출액의 절반을 넘는 4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출처: 국제투명성기구 파라과이 보고서). 이렇게 오랜 기간 부패가 당연시되다 보니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의 아메리카 바로미터 2021년 조사에서는 파라과이 국민의 75.2%가 정치인 절반 이상이 부패했다고 답했고, 74.5%는 공무원 사회에 부패가 만연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파라과이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1996년 범미주 반부패협약 비준, 2005년 UN 부패방지협약 비준, 2012년 열린 정부 파트너십 가입 등 제도적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실제로 1998년 부패인식지수 조사 당시 85개국 중 84위였던 파라과이가 2021년에는 180개국 중 128위로 올라왔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도 지난 10년간 파라과이가 눈에 띌 만한 향상을 이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요약: 스트로에스네르의 35년 부패 조장 통치가 파라과이 사회 전반에 뇌물을 일상화시켰고, 그 구조적 유산은 청렴지수와 경제 격차라는 숫자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요?

A. 두 나라는 독립 시기, 사용 언어, 주요 생산 자원까지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결정적 차이는 3국전쟁 이후의 정치 경로와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의 35년 부패 구조화에 있습니다. 우루과이는 같은 시기 비교적 청렴한 제도를 구축한 반면, 파라과이는 부패가 통치 수단이 되는 경험을 수십 년간 겪었습니다. 2021년 기준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루과이 18위, 파라과이 128위라는 격차가 그 결과입니다.

 

Q. 파라과이 3국전쟁은 왜 일어난 건가요?

A.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 정부를 자국에 유리한 정권으로 교체하려 하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파라과이 독재자 솔라노 로페스는 우루과이 정부와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브라질로 군대를 진격시켰고, 이것이 전면전으로 번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 도중 우루과이 정권이 교체되면서 파라과이는 홀로 세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입니다.

 

Q. 파라과이 부패인식지수는 지금도 나쁜가요?

A.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추세는 개선 중입니다. 1998년 조사 당시 85개국 중 84위였던 것이 2021년에는 180개국 중 128위로 올라왔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도 지난 10년간 파라과이의 눈에 띄는 향상을 언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패한 나라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파라과이는 느리지만 방향은 맞게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Q. 파라과이 초대 독재자 프란시아는 정말 청렴했나요?

A. 완전히 청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 세력에 대한 인권 탄압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다만 비교 대상을 당시 스페인 식민지 정부로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교회와 귀족의 재산을 국유화해 농민에게 분배하고, 자신의 급여도 깎아서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독재자이면서 동시에 부패 척결에 일정 부분 기여한 역설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결론

파라과이를 공부하기 전까지 저는 부패를 그냥 나쁜 사람들이 모여서 생기는 문제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라과이의 역사는 부패가 어떤 계기로 구조화되고, 그것이 한 나라의 GDP와 청렴지수를 어떻게 수십 년에 걸쳐 끌어내리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스트로에스네르라는 한 명의 독재자가 35년 동안 부패를 통치 수단으로 삼았고, 그 유산은 2024년 현재도 파라과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파라과이가 잘못된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건 아닙니다. UN 부패방지협약 비준, 열린 정부 파트너십 가입, 5개년 반부패 계획 시행 등 제도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고, 지수도 천천히 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파라과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이름이 비슷한 두 나라가 이렇게 다른 이유를 알고 나면, 남미 지도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 http://youtube.com/watch?v=f-rZVewt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