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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옛날에 있었던 공산주의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나라이다 보니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막연하게 소련 붕괴 때 같이 무너진 나라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이 나라의 탄생과 해체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늘날 발칸반도의 분쟁이 왜 아직도 꺼지지 않는지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탄생 - 남 슬라브인들의 꿈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라는 이름 자체가 "남 슬라브인들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남 슬라브족이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등 발칸반도 남부에 터를 잡고 살아온 슬라브계 민족들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나라가 처음 국가 형태를 갖춘 건 1918년, 1차 세계대전 직후였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남 슬라브인들은 전쟁 중 망명지에서 통합 국가 건설을 논의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라는 연합 왕국을 세웁니다. 이 왕국이 1929년 국명을 바꾼 것이 바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지도를 보면 바로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와 모두 국경을 맞댄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41년 추축국의 침공을 받아 점령·분할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점령 이후에도 왕당파와 공산주의 세력이 각각 저항군을 구성했고, 이들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내전까지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내전의 승자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세력이었고, 1945년 11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공식 출범합니다.
-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수립
-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국명 변경
- 1941년: 추축국 침공 및 점령
- 1945년: 티토 주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수립
티토 - 독재이지만 나름의 균형
제가 유고슬라비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 바로 티토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통치자이자 사실상 독재자인데, 이상하게도 단순히 나쁘게만 평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티토는 전후 초기 소련과 협력 노선을 걸었지만,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해방을 이뤄낸 경험이 있었던 만큼 스탈린이 자국을 위성국처럼 다루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1948년 티토-스탈린 결별이 벌어지고,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 블록에서 이탈해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 독자 노선은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으로 이어졌는데, 비동맹 운동이란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과 소련 중심의 동구 진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외교를 추구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연대를 말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인도, 이집트와 함께 이 운동의 대표 국가로 자리 잡았고(출처: UN — Non-Aligned Movement),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외교적 위상을 쌓았습니다.
경제 면에서도 티토는 노동자 자주 관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여기서 노동자 자주 관리 제도란 기업의 경영 주체를 노동자들로 삼는 방식으로, 국가가 기업을 직접 통제하는 소련식 계획경제와는 결이 다른 시장 사회주의 모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를 사회주의 틀 안에 부분적으로 접목한 실험적인 체제였습니다. 덕분에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6%에 달할 정도로 외형적인 번영을 이뤄냈고, 다른 동구권 국가들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티토는 세르비아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역사를 보면 독재자가 자기 출신 지역이나 민족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티토는 오히려 연방 내 상대적으로 잘 살던 세르비아에 특권을 주지 않고, 북부의 부를 남부 발전에 재투자하는 균형 정책을 고집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이게 진짜 대단한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이었나"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균열 - 민족주의와 경제 위기
표면적으로는 번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연방 내부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들이 서서히 곪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 정부와 주요 기관의 요직을 세르비아인들이 상당수 장악하고 있었고, 다른 민족들 사이에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잘 살던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는 자신들의 세금이 남부 개발에 쓰이는 데 반발했고, 남부 공화국들은 북부가 이기적으로 군다고 맞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는 구조였습니다.
1973년 오일 쇼크는 이런 내부 균열에 불을 질렀습니다. 오일 쇼크란 중동 산유국들의 수출 제한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전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은 사건인데, 유고슬라비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외 부채가 급격히 늘고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서, 노동자 자주 관리 제도의 구조적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데 수익 대부분이 쓰이다 보니 기술 개발과 미래 투자에 쓸 여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60년대부터 시작된 지역별 자율성 요구 시위는 1971년 크로아티아에서 연방 탈퇴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로 폭발합니다. 티토는 군과 경찰로 이를 강제 진압했지만, 민족주의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티토는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각 공화국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봉합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연방을 더욱 느슨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해체 - 티토 사후의 도미노
1980년 5월, 티토가 사망합니다. 이 한 줄이 이후 발칸반도 역사를 바꿔버립니다. 제가 직접 이 부분을 공부해보니, 연방이 티토라는 한 인물의 카리스마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티토 사망 직후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던 코소보에서 연방 탈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터졌고,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당해왔다고 느끼던 세르비아인들의 민족주의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에 오른 밀로셰비치는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이에 반발한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저항이 유혈 사태로 번지자 모든 공공기관을 폐지하고 언론까지 장악하는 강경책으로 맞섰습니다.
때마침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공산권이 도미노처럼 붕괴하면서, 유고슬라비아 각 공화국의 공산당은 급격히 힘을 잃었습니다. 자유 선거가 도입되자 민족주의 정당들이 권력을 잡았고, 결국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합니다. 세르비아는 연방군을 동원해 이를 막으려 했는데, 이것이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시작이었습니다(출처: ICTY —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슬로베니아는 세르비아계 주민이 적고 세르비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았던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독립을 인정받았습니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4년간의 혈전 끝에 1995년에야 완전한 독립을 이뤄냅니다. 가장 참혹했던 것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였습니다.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뒤섞여 살던 이 지역은 민족 학살과 내전이 뒤엉키는 비극을 맞이했고, 결국 미국·NATO·유엔이 직접 개입해 1995년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전쟁이 마무리됩니다. 이후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2006년 각각 독립국으로 분리되었고, 2008년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며 사실상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고슬라비아는 왜 소련처럼 하나로 유지되지 못했나요?
A. 소련도 결국 해체됐다는 걸 감안하면 질문의 전제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소련과 달리 단일 민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처럼 서유럽과 경제·문화적으로 연결된 공화국과 코소보처럼 가장 낙후된 지역이 한 연방 안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 경제 격차와 민족 다양성의 조합이 결정적인 차이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Q. 티토는 좋은 지도자였나요, 나쁜 지도자였나요?
A. 이 질문이 사실 제일 어렵습니다. 독재자임은 분명하고, 반정부 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민족이 얽힌 연방을 수십 년간 유지하고, 냉전 체제에서 독자 노선을 걸으며 국제적 위상을 쌓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좋다 나쁘다로 단순히 자를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Q. 코소보는 지금 완전히 독립된 나라인가요?
A. 2008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는 지금도 코소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고, UN 회원국 중 상당수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지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사실상의 독립 국가로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Q. 발칸반도 여행은 지금 안전한가요?
A. 저도 이 지역이 가보고 싶은 곳이라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같은 EU 회원국은 일반 유럽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입니다. 코소보·세르비아 국경 지역이나 보스니아 일부 지역은 아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여행 전 외교부 안전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유고슬라비아를 공부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나라의 흥망이 결코 단순한 공산주의 붕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민족주의, 경제 격차, 냉전이라는 세 가지 힘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티토가 대단한 인물이었음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의 통치가 갈등을 해결한 게 아니라 덮어두었다는 시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한 번 더 떠오른 생각은, 만약 유고슬라비아가 지금도 존재했다면 축구를 얼마나 잘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만 해도 각각 월드컵에서 강팀으로 이름을 날리는데, 한 나라였다면 정말 무서운 팀이 됐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로 가득한 발칸반도,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습니다. 그 땅 위에 쌓인 역사의 무게를 발로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