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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세계지도를 펼칠 때마다 이상하게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캐나다 옆에 붙어 있는데 왜 미국 땅인지,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저 부분은 대체 뭔지. 알래스카 팬핸들(Alaska Panhandle)이라고 불리는 그 지역 말입니다. 여기서 팬핸들이란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길게 뻗은 형태의 영토를 가리키는 지리 용어로, 본체에서 좁고 길게 이어진 땅을 묘사할 때 씁니다. 이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지기까지 러시아, 영국, 미국, 캐나다가 얽힌 복잡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애매한 조약 - 모피무역이 만든 국경
알래스카가 처음 서양에 알려진 건 1741년입니다. 러시아 제국의 의뢰를 받은 덴마크 항해사 비투스 베링(Vitus Bering)이 이끄는 탐험대가 이 땅을 처음 발견했고, 이후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모피 공급처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해안선을 따라 정착지를 세우며 해달과 물개 등 풍부한 모피 자원을 수확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영국도 북서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활동 반경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결국 182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Convention of 1825)이 체결됩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이란 러시아와 영국이 북아메리카 북서부 지역에서의 영토 경계를 공식적으로 합의한 국제 조약으로, 현재 알래스카 남동부 국경의 원형이 된 문서입니다.
조약의 내용을 요약하면, 포틀랜드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 뒤 해안과 평행한 산 정상을 따라 서경 141도까지 경계를 긋고, 산맥이 없는 구간에서는 해안으로부터 10마린 리그(약 56km) 이내에 국경을 긋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조약이 실제 지형과 전혀 맞지 않는 지도를 기반으로 맺어졌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용된 지도는 지도 제작자 조지 밴쿠버(George Vancouver)가 그린 것이었는데, 실제 알래스카 남동부 해안은 수백 개의 섬과 피오르(Fjord), 그리고 복잡한 만(Bay)으로 가득했습니다. 여기서 피오르란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좁고 깊은 해안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복잡한 지형 앞에서 "어떤 해안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질문은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국경선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양국이 크게 다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모피 무역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굳이 험준한 내륙 깊숙이 들어가 국경을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없었고, 러시아 아메리칸 컴퍼니와 영국의 허드슨 베이 컴퍼니(Hudson's Bay Company)는 오히려 서로 특정 지역의 무역권을 임대하는 실용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기때문입니다. 모피 무역이 쇠퇴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별로 먹을 거 없는 땅"을 두고 다투는 건 양쪽 모두에게 손해였습니다.
1867년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약 720만 달러(현재 가치 약 1억 3천만 달러)에 넘겼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시 처음엔 이 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1871년 캐나다가 국경 측량을 제안했을 때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해 버렸습니다. 남북전쟁이 막 끝난 시점에서 알래스카 국경 같은 건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 1741년 비투스 베링 탐험대의 알래스카 발견, 이후 러시아 모피 무역 거점으로 개발
- 182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 체결, 러시아·영국 간 남동 알래스카 경계 합의
- 조약의 기반이 된 조지 밴쿠버의 지도는 실제 지형과 큰 차이가 있어 해석 분쟁의 씨앗을 심음
- 1867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 국경 모호성은 그대로 이전됨
영국의 선택 - 골드러시로 인한 국경 분쟁
수십 년간 잠자던 국경 문제가 폭발한 건 1896년이었습니다. 알래스카 바로 건너편 캐나다 클론다이크(Klondike) 지역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금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광부와 탐험가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클론다이크 골드러시(Klondike Gold Rush)입니다. 제가 직접 지도를 펼쳐보며 느낀 건데, 내륙의 금광 지대로 접근하려면 반드시 알래스카 남동부의 해안과 항구를 거쳐야 했습니다. 즉, 이 길쭉한 팬핸들 지역의 소유권이 곧 금광 접근로의 통제권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캐나다 정부는 해안 섬들을 포함한 넓은 범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고,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더 나아가 훨씬 내륙 깊은 라인까지 캐나다 영토라고 압박해 왔습니다. 반면 미국은 해안 전체를 미국 영토로 본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금이 나온다고 하자마자 이렇게 달라지는 태도는, 솔직히 지금 봐도 좀 웃깁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굳이 측량할 필요 없다"던 두 나라가 맞습니다.
결국 양국은 국제 중재 재판(International Arbitration)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합의합니다. 국제 중재 재판이란 분쟁 당사국이 제3의 중립 기구나 인물을 내세워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미국 측 위원 3명, 캐나다 측 위원 2명, 그리고 영국 측 위원 엘버스톤 경(Lord Alverstone) 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캐나다 입장에서는 영국이 당연히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엘버스톤 경은 미국 측 해석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캐나다 의회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최종 결정에 서명조차 거부했지만, 국제 중재의 구속력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판결이 공정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지금도 시각이 엇갈립니다. 캐나다 측에서는 당시 영국이 급부상하던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라는 앵글로색슨 우방이 필요했고, 알래스카 국경쯤은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패였다고 봅니다. 실제로 영국은 같은 시기인 1901년에 과거 중남미 운하 건설을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한 협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미국의 단독 파나마 운하 건설을 용인하기도 했습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Hay-Pauncefote Treaty).
반면 미국 측은 1825년 조약의 조문을 보면 미국의 해석이 명백히 더 정확했고, 영국이 이미 파나마 운하까지 양보한 마당에 굳이 이번에도 미국 편을 들 이유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판단하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클론다이크 금광 지대로 이어지는 해안과 수로를 모두 확보하며 압도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었습니다(출처: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of the Historian).
캐나다는 포틀랜드 운하 내 피어스 섬과 웰스 섬만 건지고 나머지 해안 지역을 모두 미국에 넘겨줘야 했습니다. 이 판결 이후 캐나다 내부에서는 영국의 식민지 자치령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했고, 이것이 캐나다가 영국과는 별개의 독립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알래스카 팬핸들 하나가 캐나다의 독립 의식을 앞당겼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그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알래스카 팬핸들은 왜 캐나다 땅이 아닌가요?
A. 1825년 러시아와 영국이 체결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이 지역이 러시아 쪽 영토로 설정되었고, 1867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전체를 매입하면서 그대로 이전된 것입니다. 이후 1903년 국제 중재 재판에서도 미국의 해석이 인정되어 해안 지역 전체가 미국 영토로 확정되었습니다. 캐나다가 항의했지만 법적 구속력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Q. 미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에서 산 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닌가요?
A. 당시 720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약 1억 3천만 달러 수준입니다. 크림 전쟁 패배로 해군력이 약해진 러시아가 영국에 빼앗기기 전에 팔아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초기엔 "쓸모없는 땅을 비싸게 샀다"는 비판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엔 양쪽 모두 이 거래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던 셈입니다.
Q. 클론다이크 골드러시가 알래스카 국경 분쟁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A. 클론다이크 금광은 캐나다 영토 내에 있었지만, 금광으로 향하는 주요 접근로가 알래스카 남동부 해안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해안 소유권이 곧 금광 접근로의 통제권이 되었고,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수십 년간 무관심하던 두 나라가 갑자기 치열하게 영토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국경 분쟁을 촉발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영국이 캐나다 편을 안 들어준 이유가 뭔가요?
A. 캐나다 측에서는 당시 영국이 급부상하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알래스카 국경은 그 대가로 양보할 수 있는 카드였다고 봅니다. 반면 미국 측은 조약 해석 자체가 미국에 유리했기 때문에 영국이 공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는 부분입니다.
결론
어릴 때 세계지도에서 느꼈던 그 불편한 돌출부의 정체를 이제는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1825년 엉성한 지도 위에 그어진 조약 하나가 수십 년 뒤 골드러시라는 불씨를 만나 국제 분쟁으로 번지고, 그 결과가 오늘날 알래스카 팬핸들의 모양을 결정지었습니다.
제가 이 역사를 공부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결국 "돈이 되는 순간 태도가 바뀐다"는 점이었습니다. 알래스카 국경을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던 나라들이 금광이 발견되자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으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이건 1800년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누군가 이 경계를 명확히 했다면 캐나다의 독립 의식이 이렇게 일찍 커졌을까, 영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남습니다. 이 지역 국경 하나가 20세기 국제 질서 재편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세계 지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