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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보다가 유독 눈에 걸리는 국경선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로코 아래쪽, 점선으로만 그어진 그 경계가 바로 서사하라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상에 점선 국경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 땅이 지금도 분쟁 중이라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으니까요. 사막 하나를 두고 이렇게 오랜 시간 싸울 수 있구나 싶었는데, 파고들수록 이건 단순한 영토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베를린 회담 - 지도 위에서 결정된 운명

1884년, 유럽 열강들은 독일 제국의 수도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대륙을 나눠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른바 베를린 회담(Berlin Conference)입니다. 여기서 베를린 회담이란 아프리카 현지 주민의 동의 없이 유럽 국가들끼리만 모여 대륙 전체의 식민 지배 경계선을 획정한 국제 회의를 말합니다. 민족도, 언어도, 문화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들이 관리하기 편한 방향으로 그냥 직선을 그어버린 것입니다.

이 회담을 주도한 인물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였습니다. 열강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자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나눠먹기의 룰을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식민지 경쟁에서 다소 밀렸던 에스파냐도 이 자리에서 카나리아 제도 맞은편의 황무지를 하나 배정받습니다. 그게 바로 에스파냐령 사하라, 지금의 서사하라입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에 맞먹는 광활한 땅이었지만 순도 100% 사막이었기에, 그 당시엔 아무도 탐내지 않는 잉여 토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을 때, 서사하라 원주민인 사하라위(Sahrawi)족은 이 회담에서 아예 존재 자체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하라위란 서사하라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아랍계 유목 민족을 말합니다. 수백 년간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의사는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베를린 회담이 남긴 폐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출처: UN 탈식민지화 공식 페이지

  • 1884년 베를린 회담으로 아프리카 국경선이 유럽 열강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됨
  • 에스파냐는 이 회담을 통해 서사하라(한반도 면적 규모)를 배정받음
  • 사하라위 원주민은 회담에서 완전히 배제됐으며 그 후유증이 오늘까지 이어짐
요약: 1884년 베를린 회담은 원주민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분할한 사건으로, 서사하라 분쟁의 역사적 뿌리가 됐습니다.

 

영토 강탈 - 인산염이 만들어낸 영토 강탈의 논리

서사하라가 주목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자원이었습니다. 에스파냐가 식민 지배 중에 땅을 파다 발견한 것이 바로 인산염(phosphate)입니다. 인산염이란 인(P) 성분을 함유한 광석으로, 화학 비료와 농업용 토양 개량제의 핵심 원료입니다. 전 세계 인산염 매장량의 상당 부분이 이 모래 땅 아래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없었다면 어쩌면 에스파냐도, 모로코도 이 땅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그냥 넓기만 한 사막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1위의 인산염 매장지라는 타이틀을 알고 나니까, 이게 단순히 '황무지 분쟁'이 아니라는 게 바로 이해됐습니다. 운을 타고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서사하라를 보면 그 말이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산염이 없었다면 침략을 덜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75년 에스파냐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가 사망하면서 에스파냐는 식민지 유지를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습니다. 에스파냐는 사하라위 원주민 독립 조직인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폴리사리오 전선이란 1973년 사하라위인들이 결성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채 실행도 되기 전에 모로코의 '녹색 행군(Green March)'으로 무력화됩니다.

녹색 행군이란 1975년 모로코 국왕 하산 2세(Hassan II)가 민간인 35만 명을 동원해 서사하라 국경을 넘어 이주시킨 사건을 말합니다. 군대도 아니고 민간인이 넘어오는 걸 무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에스파냐는 결국 서사하라 북쪽 3분의 2를 모로코에, 남쪽 3분의 1을 모리타니에 넘기는 마드리드 협정을 체결하고 철수했습니다. 출처: BBC, Western Sahara profile

요약: 풍부한 인산염 자원이 서사하라를 두고 벌어지는 분쟁의 핵심 동력이며, 모로코의 녹색 행군은 사하라위 독립의 기회를 사실상 차단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독립 전망

마드리드 협정 이후 사하라위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폴리사리오 전선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SADR, Sahrawi Arab Democratic Republic)의 건국을 선포하고 무장 독립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서 SADR이란 서사하라의 사하라위 원주민들이 수립을 선언한 미승인 망명 국가로, 현재는 사실상 알제리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망명 정부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이에 맞서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이른바 모로코 장벽(Moroccan Wall)을 건설합니다. 모로코 장벽이란 서사하라를 모로코 통제 구역과 폴리사리오 전선 지배 구역(자유지구)으로 나누는 약 2,700km 길이의 토벽·철조망·지뢰 구조물을 말합니다. 거의 한반도를 종단하는 수준의 규모입니다. 제가 이 장벽의 실제 위성 사진을 찾아봤는데, 중동의 콘크리트 장벽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흙더미에 지뢰를 깔아놓은 구조라서 외관은 허술해 보여도 그 잔혹함은 오히려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1년 UN의 중재로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전선 사이에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이후 직접적인 전투는 잦아들었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장벽 동쪽의 자유지구에 살던 사하라위인 수만 명은 알제리 남서부 틴두프(Tindouf) 지역의 난민 캠프에서 수십 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UN 난민기구(UNHCR)는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난민 위기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단순히 "먼 나라 영토 분쟁"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 땅 일부를 점거하고 민간인을 이주시킨 뒤 "이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면, 이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모로코는 에스파냐에게 식민지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던 나라가, 서사하라에서 그보다 더한 일을 저지른 셈입니다. 이 아이러니가 제게는 가장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요약: 모로코 장벽 건설 이후 분쟁은 장기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고, 사하라위 난민들의 귀환과 SADR의 독립 승인은 여전히 국제 사회의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서사하라는 지금 어느 나라 땅인가요?

A. 공식적으로는 미결 상태입니다. 서사하라 영토의 약 80%는 모로코가 실효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는 폴리사리오 전선이 관할하는 자유지구입니다. UN은 서사하라를 비자치 지역(Non-Self-Governing Territory)으로 분류하며 모로코의 주권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로코의 강점 상태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Q. 세계 지도에서 모로코 국경이 점선인 이유가 뭔가요?

A. 구글 지도 등 일부 지도에서 모로코 남부 경계가 점선으로 표시되는 것은 서사하라와의 경계가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확정된 국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로코가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주권이 법적으로 인정된 영토는 아니라는 의미에서 점선을 사용합니다. 저도 이 점선을 처음 보고서야 서사하라 문제를 제대로 찾아보게 됐습니다.

 

Q. 서사하라가 그렇게 척박한데 왜 모로코가 포기를 안 하나요?

A. 인산염 때문입니다. 서사하라 부스크라(Bou Craa) 광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인산염 매장지 중 하나로, 화학 비료 생산에 필수적인 자원입니다. 모로코는 이미 세계 인산염 매장량의 약 70%를 보유한 나라인데, 서사하라까지 더해지면 그 비중은 압도적이 됩니다. 단순한 영토 자존심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Q. 폴리사리오 전선은 지금도 활동하나요?

A. 네, 활동 중입니다. 2020년 폴리사리오 전선은 1991년 휴전 협정이 사실상 파기됐다고 선언하고 다시 무장 투쟁을 재개했습니다. 직접적인 대규모 전투보다는 산발적인 교전과 시위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완전히 평화로운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제 사회의 관심이 크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을 뿐입니다.

 

결론

서사하라 문제를 처음 접한 게 고작 지도 위 점선 하나였는데, 파고들수록 이 땅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베를린 회담이라는 19세기의 결정이 21세기에도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산염 하나가 한 민족의 운명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로코의 서사하라 강점을 두고 일부에서는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논리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에스파냐에게 식민지 반환을 요구하던 나라가 정작 원주민들의 독립은 무력으로 짓밟았다는 점에서, 이건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사하라 분쟁이 하루빨리 과거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이 한 번쯤 그쪽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6Q0JZb1V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