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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500년 전, 이미 그 땅을 밟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26 월드컵에서 노르웨이 팬들이 바닥에 앉아 노를 젓는 장면을 보다가 저도 처음엔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덴마크 언론이 격분하고 스웨덴이 비웃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이 응원 하나가 천 년 묵은 자존심 싸움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북유럽 역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바이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노르웨이를 떠올렸고, 덴마크나 스웨덴은 그냥 같은 북유럽 나라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 나라는 바이킹 시대부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이킹 시대의 공식적인 시작은 서기 793년 6월 8일로 기록됩니다. 영국 북동부 린디스판 섬의 수도원이 무장한 이방인들에게 습격당한 날입니다. 이 첫 번째 공격을 감행한 세력이 대부분 덴마크 지역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후 세 지역의 바이킹은 각자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덴마크는 남쪽, 노르웨이는 서쪽 대서양, 스웨덴은 동쪽 러시아 방향이었습니다. 같은 고대 노르드어를 쓰고 같은 오딘과 토르를 믿던 사람들이 나간 방향 하나로 완전히 다른 역사를 만들어낸 겁니다. 여기서 고대 노르드어란 8세기에서 14세기 사이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통용된 게르만계 언어로, 현재 덴마크어·노르웨이어·스웨덴어의 공통 뿌리에 해당합니다.

세 나라가 얼마나 가까운 뿌리를 가졌냐면, 지금도 이 세 나라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대략 알아듣습니다. 반면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핀란드는 아예 다른 언어 계통이라 이 이야기에서 제외됩니다. 한국 표준어와 제주 사투리 정도의 거리감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 덴마크 바이킹: 남쪽 유럽을 향해 정복과 점령 — 영국 데인로 지배, 노르망디 건국
  • 노르웨이 바이킹: 서쪽 대서양을 향해 탐험 — 아이슬란드 정착, 아메리카 최초 도달
  • 스웨덴 바이킹: 동쪽 러시아 내륙을 향해 무역 — 루스(Rus) 국가 건설, 러시아의 어원
요약: 바이킹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세 방향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역사를 만든 스칸디나비아 세력이었습니다.

 

세 지역 바이킹 - 누가 진짜 바이킹인가

제가 직접 이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민망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바이킹의 이미지로 생각했던 것들, 즉 도끼를 든 강인한 전사와 무자비한 정복자의 모습이 사실 노르웨이와 덴마크 바이킹이 뒤섞인 이미지라는 걸 알았을 때입니다. 저는 그걸 통째로 노르웨이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바이킹은 세 그룹 중 가장 먼저 왕국 체계를 갖추고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영국 동쪽 절반을 점령하고 자체 법률을 적용한 데인로(Danelaw)를 세웠는데, 데인로란 덴마크인의 법이 통하는 영토를 가리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덴마크 바이킹 왕 크누트는 1016년부터 1035년까지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를 동시에 다스리는 북해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약탈자에서 왕으로 올라선 겁니다.

프랑스 북쪽에 자리 잡은 노르망디(Normandy) 역시 덴마크 바이킹의 작품입니다. 노르망디란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덴마크 바이킹이 끊임없이 쳐들어오자 프랑스 왕이 땅을 내주며 맺은 협정에서 탄생한 지역입니다. 이 노르망디의 후손들이 1066년 영국을 통째로 정복한 노르만 정복을 일으켰고, 현재 영국 왕실의 뿌리가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출처: Historic England).

노르웨이 바이킹은 방향 자체가 달랐습니다. 험한 산지와 깊은 피오르드로 막혀 육로 이동이 어려웠던 지형 탓에 서쪽 대서양으로 눈을 돌린 겁니다.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고, 그린란드를 거쳐 서기 1003년경 레이프 에이릭손이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도달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이 사실은 콜럼버스의 1492년 아메리카 도착보다 약 500년이 빠릅니다.

스웨덴 바이킹은 도끼보다 저울을 선택했습니다. 발트해를 건너 러시아 대륙의 강줄기를 따라 남하하며 비잔틴 제국과 아랍 상인들과 교역했고, 이 상인 집단을 현지인들이 루스(Rus)라고 불렀습니다. 루스란 '노를 젓는 사람들' 혹은 스웨덴 동부 지명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이것이 러시아(Russia)라는 국명의 어원이 됩니다. 스웨덴 바이킹이 거점으로 삼은 키예프 루스는 오늘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 나라의 역사적 뿌리입니다(출처: National Geographic).

제 판단으로는 진짜 바이킹의 후예라는 타이틀은 덴마크가 가장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이킹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즉 전투력과 정복력 면에서 덴마크 바이킹이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영국 왕까지 배출했고, 블루투스(Bluetooth) 기술의 이름이 된 덴마크 왕 하랄 블루투스의 유산까지 현재에 살아 있습니다. 여기서 블루투스란 현재 무선 기기 연결 기술의 명칭인데, 여러 부족을 통합한 하랄 블루투스 왕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로고조차 왕의 이름 이니셜을 바이킹 문자로 합친 형태입니다.

요약: 덴마크는 정복, 노르웨이는 탐험, 스웨덴은 무역으로 각기 다른 방식의 바이킹 역사를 남겼으며, 셋 모두 오늘날 세계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현대 경제

제 경험상 북유럽 하면 복지국가, 경제 강국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이 항상 잘 살았던 건 아닙니다. 19세기 말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수십만 명이 먹고살 길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북유럽의 부는 역사가 아니라 각 나라가 선택한 전략에서 비롯됐습니다.

노르웨이의 변곡점은 1969년 북해 유전 발견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자원 수익이 소수 권력층에 집중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노르웨이는 이 수익을 국부 펀드(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에 적립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국부 펀드란 자원이나 무역 흑자로 생긴 국가 자산을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국가 투자 기금을 뜻합니다. 현재 규모는 약 1조 9천억 달러, 한화 약 2,500조 원 이상으로 인구 550만 명 기준 국민 1인당 약 4억 5천만 원의 적금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이 풍요가 역설적으로 새 산업 개발 동기를 약하게 만드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 우려도 함께 따라오고 있습니다.

스웨덴에는 석유가 없습니다. 대신 이케아(IKEA), 볼보(Volvo), 에릭슨(Ericsson), 스포티파이(Spotify), H&M이라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인구 1,000만 명의 나라에서 이 정도의 글로벌 브랜드가 나온 것은, 안전망이 없었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혁신으로 전환된 결과로 보입니다. 천 년 전 도끼 대신 저울을 들고 동쪽으로 나갔던 스웨덴 바이킹의 상인 기질이 현대 기업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신기했습니다.

덴마크는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Maersk), 레고(LEGO), 칼스버그(Carlsberg), 그리고 최근 비만 치료제로 전 세계를 흔든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590만 명짜리 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나라 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천 년 전 바다를 지배했던 덴마크 바이킹이 지금은 해상 물류로 그 바다를 다시 지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단서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도구만 바뀌었을 뿐 이 나라들은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요약: 노르웨이는 국부 펀드로, 스웨덴은 기술 혁신으로, 덴마크는 해운·제약으로 현대의 번영을 일궜으며, 그 전략은 천 년 전 바이킹의 성격과 묘하게 겹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바이킹은 노르웨이만의 역사 아닌가요?

A.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신데, 바이킹은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세 지역을 아우르는 스칸디나비아 문화권 전체의 역사입니다. 다만 노르웨이 바이킹이 아이슬란드와 아메리카 탐험에서 두드러졌고, 최근 월드컵 응원 등 문화적 활용이 적극적이어서 노르웨이 이미지가 강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블루투스 이름이 진짜 바이킹 왕에서 나온 건가요?

A. 맞습니다. 10세기 덴마크 왕 하랄 블루투스(Harald Bluetooth)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여러 부족을 하나로 통합한 이 왕처럼, 서로 다른 기기를 하나의 무선 통신으로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블루투스 로고 역시 왕의 이름 이니셜(H, B)을 바이킹 룬 문자로 합쳐 만든 형태입니다.

 

Q. 러시아라는 이름이 스웨덴 바이킹에서 나왔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유력한 학설입니다. 동쪽으로 진출한 스웨덴 바이킹을 현지 슬라브인들이 루스(Rus)라고 불렀고, 이것이 키예프 루스라는 국가명, 나아가 러시아(Russia)라는 국명의 어원이 됐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입니다. 다만 어원의 정확한 경로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일부 이견도 존재합니다.

 

Q. 북유럽 나라들은 예전부터 부유했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19세기 말까지 북유럽은 척박한 기후와 부족한 농지로 오히려 유럽의 가난한 지역에 속했습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수십만 명이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정도입니다. 현재의 번영은 20세기 이후 각국이 선택한 자원 전략, 산업 혁신, 복지 체계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Q. 아이슬란드도 바이킹 후예라고 볼 수 있나요?

A. 그렇습니다. 노르웨이 바이킹이 직접 건너가 정착한 섬이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 본토 3국보다 오히려 더 직접적인 바이킹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바이킹의 후예라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관광업을 키우고 경제를 회복한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결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역사적 근거로 따지면 덴마크가 원조 바이킹에 가장 가깝고, 탐험의 스케일로 따지면 노르웨이가 앞서며, 그 유산의 규모로 따지면 러시아라는 나라 이름을 남긴 스웨덴이 위입니다. 셋 다 바이킹의 후예가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가 바이킹의 나라로 기억하는 건 노르웨이입니다. 월드컵 응원 하나에 나라 전체가 하나로 뭉치고, 패배한 날도 10만 명이 거리에 나와 마지막 노 젓기를 했습니다.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역사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야 진짜 유산이 된다는 것을 노르웨이가 보여준 겁니다. 나라의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보인다는 생각이 이번에 더 깊어졌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P3jHklT2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