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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하면 솔직히 저도 처음엔 타코와 마약 카르텔, 두 가지만 떠올렸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나라인데 왜 이렇게 무서운 나라가 됐을까, 막연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의 역사를 하나씩 들여다보니 이건 단순히 정치가 못나서가 아니었습니다. 500년에 걸친 정복, 착취, 전쟁, 부패가 층층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아즈텍 제국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병사 600명을 이끌고 멕시코 해안에 발을 딛었을 때 그곳엔 이미 거대한 문명이 있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인구 20만 명이 넘는 도시였고, 호수 위에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이 도시는 당시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도 컸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이 처음 이 도시를 봤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됐다고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600명이 수백만 명의 제국을 무너뜨린건지 궁금해집니다. 공부해보니 세 가지 요인이 맞물렸습니다. 총과 대포와 말이라는 압도적인 군사력, 아즈텍에 원한을 품은 주변 부족들의 협력, 그리고 천연두였습니다.
특히 천연두(smallpox)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천연두란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노출되어 어느 정도 면역을 쌓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면역이 전혀 없는 원주민에게는 사실상 생물학적 무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정복 후 100년 동안 멕시코 원주민 인구의 90% 이상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출처: PBS, Guns Germs and Steel). 2,500만 명이던 인구가 1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홀로코스트나 원폭 피해보다도 규모가 큰 인구 재앙이었습니다.
1521년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된 뒤 스페인은 이 땅을 누에바 에스파냐, 즉 새로운 스페인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즈텍의 신전은 파괴됐고, 그 돌로 가톨릭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지금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대성당이 아즈텍 대신전 터 위에 서 있는 건데,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에 얹히는 느낌이었습니다.
- 군사력: 총·대포·말 — 아즈텍인들은 말을 한 번도 본 적 없어 기마병을 신으로 오해
- 동맹 부족: 아즈텍에 착취당하던 틀락스칼라 부족 등이 스페인 편에 가담
- 천연두: 원주민 인구 90% 이상 사망 — 가장 결정적인 파괴 요인
영토 상실
독립 이후의 멕시코 역사를 보면 솔직히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생깁니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 후 50년 동안 대통령이 쉰 번 바뀌었습니다. 산타 안나라는 인물 혼자 11번이나 대통령직을 오르내린 건 그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혼란 속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1845년 미국이 텍사스를 합병하고, 1846년 멕시코·미국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여기서 명백한 운명이란 미국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사명이라는 팽창주의 사상으로, 사실상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였습니다.
전쟁은 처음부터 일방적이었습니다. 미군은 베라크루스에 상륙해 멕시코시티까지 진격했고, 국립궁전에 성조기를 꽂았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때 멕시코가 이겼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였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었는데, 내분과 정치적 혼란이 패인이었습니다.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으로 멕시코는 전체 영토의 55%를 미국에 넘겨야 했습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란 멕시코·미국 전쟁을 마무리한 평화 협정으로, 텍사스·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애리조나·뉴멕시코가 이때 전부 미국 영토로 넘어갔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Library of Congress). 미국이 1,500만 달러를 지불하긴 했지만, 그 직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됐으니 사실상 헐값 거래도 아닌 강탈에 가까웠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잃은 것이 특히나 뼈아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캘리포니아의 경제 규모는 단독으로 세계 5위권에 해당합니다. 만약 이 땅이 아직 멕시코 영토였다면, 멕시코의 현재 모습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 없다고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멈추게 됩니다.
부패 정부
영토를 잃은 이후에도 멕시코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1876년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35년간 철권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를 포르피리아토(Porfiriato)라고 부르는데, 포르피리아토란 디아스 독재 체제 아래 외형적 근대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과실이 극소수 지주와 외국 자본에게만 돌아간 불평등 발전의 시대를 뜻합니다. 당시 멕시코 농촌 인구의 97%가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고, 전체 토지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들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 분노가 1910년 멕시코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북부에선 판초 비야가 기마 부대로 전선을 누볐고, 남부에선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토지 반환을 외치며 농민을 이끌었습니다. 10년간 이어진 혁명으로 당시 인구의 약 10%인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혁명 이후 탄생한 제도혁명당(PRI)은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추면서도 실제로는 71년간 연속으로 집권한 일당 독재 체제였습니다.
제가 처음엔 멕시코의 문제가 정치 세력 간의 다툼 정도라고 막연히 들었는데, 공부하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부패한 정부 구조가 수십 년간 방치된 결과, 국가가 채워야 할 공백을 시날로아 카르텔(Sinaloa Cartel) 같은 마약 조직들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시날로아 카르텔이란 멕시코 북서부를 거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 밀수·유통망을 운영하는 조직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세금을 걷고 치안을 담당하며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칼데론 대통령이 카르텔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오히려 폭력이 격화됐고, 이후 4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카르텔이 사용하는 무기의 70% 이상이 미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도 중요한 맥락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이면서 동시에 카르텔의 최대 무기 공급처인 셈입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남긴 말, "불쌍한 멕시코여, 신은 너무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깝구나"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방향만 잡았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즈텍 제국은 왜 그렇게 빠르게 무너진 건가요?
A. 군사력 차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즈텍의 가혹한 공물 수탈과 인신 공양에 불만을 품은 주변 부족들이 스페인 편에 가담했고, 무엇보다 천연두라는 전염병이 면역이 전혀 없는 원주민 사회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정복 후 100년 동안 원주민 인구의 90% 이상이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합니다.
Q. 멕시코가 미국에 잃은 영토는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A.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멕시코는 전체 국토의 55%를 미국에 넘겼습니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이때 미국 영토가 됐으며, 지금 미국 서부 지역의 대부분이 원래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미국이 지불한 1,500만 달러는 그 직후 캘리포니아 금광이 발견되면서 사실상 헐값이 됐습니다.
Q.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이렇게 강해진 이유가 뭔가요?
A. 수십 년간의 부패 정부가 만들어낸 행정 공백, 그리고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마약 소비 시장이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카르텔이 사용하는 무기의 70% 이상이 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마약 수요와 무기 공급이 동시에 미국에서 온다는 점에서 멕시코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습니다.
Q. 멕시코 혁명은 결국 성공한 건가요?
A. 혁명 자체는 1917년 진보적인 신헌법 제정으로 일단락됐지만, 그 결과가 성공이었는지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혁명 이후 집권한 제도혁명당(PRI)이 71년간 사실상 일당 독재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토지 개혁과 노동자 권리가 헌법에 담겼지만, 실제 집행은 미흡했고 구조적 불평등은 이어졌습니다.
결론
멕시코를 공부하기 전까지 저는 멕시코를 그냥 무서운 나라로 뭉뚱그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00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그 무서움이 어디서 왔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복, 착취, 영토 상실, 부패 정부가 겹겹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어느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멕시코 혼자 만들어낸 현실도 아니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멕시코에 가서 타코를 직접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멕시코 음식이 워낙 매력적이고, 그 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지금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멕시코가 언젠가 정부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올바르게 바뀐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억 3천만 명의 인구와 젊은 노동력을 가진 나라가 구조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