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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하면 메시, 축구, 그리고 심각한 인플레이션 정도만 떠올렸는데,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보면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싶어 파고들었더니, 단순한 '퍼주기 정치' 한 줄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몰락 배경
제가 직접 공부해봤는데,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화려했습니다. 1900년대 초중반, 아르헨티나는 팜파스(Pampas) 평원이라는 세계 3위 규모의 비옥한 초원 지대를 바탕으로 농업 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여기서 팜파스 평원이란, 아르헨티나 중부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 지대로,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세계적인 곡물·축산물 생산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땅이 온통 농사와 목축에 최적화된 땅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소고기와 밀 공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일자리가 넘쳤고 교육·복지·치안 수준도 높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럽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유럽 국가들이 폐허가 되는 동안에도 아르헨티나는 꿋꿋하게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만 봐서는 아르헨티나가 후진국이 될 거라는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균열은 1943년부터 시작됩니다. 후안 페론을 포함한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1946년 후안 페론이 제2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페론주의(Peronism)에 입각한 복지·빈민구제 정책이 본격화됩니다. 여기서 페론주의란, 노동자 계층의 권익 향상과 국가 주도 경제 개입을 핵심으로 하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정치·경제 이념입니다. 빈민율이 줄고 임금이 오른 건 사실이지만, 제 생각엔 이걸 순수하게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정 건전성은 이미 이 시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임금 상승 역시 뒤에 올 인플레이션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팜파스의 비옥한 땅이 벌어다 준 외화 수입이 있었기에 이 시기는 버텼지만, 그 여유가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덮어버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 팜파스 평원: 세계 3위 비옥도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의 핵심 자원
- 1900년대 초중반: 유럽인들이 역이민을 올 만큼 높은 생활 수준 유지
- 페론주의의 등장: 복지 확대로 단기 지표 개선, 그러나 재정 부담 시작
아르헨티나의 외채 증가
제 경험상 어떤 나라가 망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딱 한 가지 이유로 망했다"는 설명은 거의 다 틀렸습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많지만, 저는 그게 절반의 진실이라고 봅니다. 진짜 파국은 19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호르헤 비델라 정권의 연쇄 실책에서 비롯됐습니다.
비델라 정권이 밀어붙인 것은 자본 자유화와 수입 자유화였습니다. 자본 자유화란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정책이고, 수입 자유화란 외국 상품을 큰 제약 없이 들여올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정책입니다. 얼핏 들으면 경제를 열어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르헨티나에는 중화학공업 기반이 없었다는 겁니다. 인프라도, 기술도, 교육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만 열었으니, 국내 산업은 외국 제품에 치이고 외채만 불어났습니다.
실제 수치를 보면 더 충격적입니다. 1975년 78억 달러였던 외채가 1983년에는 45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8년 만에 6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빚을 갚겠다고 또 외화를 빌려오는 전형적인 부채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에 노조 탄압과 최저임금제 폐지까지 겹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년 만에 바닥을 쳤고, 빈부격차는 폭발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후안 페론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노동 보호 체계가 불과 10년도 안 되어 무너진 것입니다(출처: IMF Working Paper, Argentina's Economic Reforms).
설상가상으로 비델라는 1978년 FIFA 월드컵을 아르헨티나에서 개최하기 위해 엄청난 뒷돈을 쏟아부었고, 우승을 위해 심판과 상대팀에도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내 불만을 잠재우려고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가 완패했고, 심지어 패전 사실을 숨기려다 대표팀 선수들의 양심 선언으로 들통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실책이 층층이 쌓인 결과가 지금의 아르헨티나입니다. 포퓰리즘 하나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그렇다고 군사 정권의 책임을 빼고 말하기도 불가능합니다.
태환 정책, IMF, 그리고 한국 시사점
군사 정권이 물러난 뒤 들어선 라울 알폰신 정권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외채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1989년에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5,000%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사태가 터집니다. 여기서 초인플레이션이란 연간 수백 퍼센트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물가 상승 현상으로, 화폐 가치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월급을 받는 날 바로 물건을 사러 뛰어가야 했습니다. 며칠만 지나도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경제 장관 도밍고 카발로가 꺼내든 카드가 달러 페그제(태환 정책, Convertibility Plan)입니다. 달러 페그제란 자국 통화와 미국 달러를 1대1 고정 환율로 묶어두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부작용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수출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아르헨티나의 농산물 경쟁력이 떨어졌고, 수입품 구매는 오히려 쉬워져 달러가 국외로 계속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도밍고 카발로의 선택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했기때문입니다. 다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환율만 고정한 처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출처: World Bank, Argentina Overview).
2000년에는 결국 IMF에 140억 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IMF는 긴축 조건을 달았습니다. 여기서 긴축 정책(Austerity)이란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 정책을 말합니다. 하지만 긴축이 오히려 경기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고, 2001년에는 은행 계좌에 예금된 200억 달러가 해외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뱅크런(Bank Run)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뱅크런이란 예금자들이 은행이 망할 것을 우려해 동시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입니다. 정부가 계좌를 동결하자 국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대통령이 연이어 사임하는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를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보기 드문 사례이고, 아르헨티나는 그 반대 방향을 걸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세계에는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 네 종류의 나라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아르헨티나는 9차례나 국가부도(모라토리엄, Moratorium)를 선언했습니다. 모라토리엄이란 국가가 외채를 더 이상 갚지 못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는 것으로, 한 번만 해도 국가 신용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그걸 아홉 번이나 했다는 건 구조적 문제가 반복됐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선심성 정책이 반복될 때마다 아르헨티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아서 더 불편한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르헨티나가 원래 잘사는 나라였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1900년대 초중반 아르헨티나는 1인당 GDP 기준으로 세계 5위권에 드는 경제 강국이었습니다. 팜파스 평원을 기반으로 한 농업 수출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고,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올 만큼 생활 수준이 높았습니다.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보면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Q.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 포퓰리즘인가요?
A. 포퓰리즘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군사 정권의 자본·수입 자유화 실패, 포클랜드 전쟁 패전, 달러 페그제의 부작용, IMF 긴축 조건 등 정치·경제·사회적 실책이 복합적으로 얽혔습니다. 다만 저는 페론주의에서 시작된 재정 방만과 이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권의 퍼주기 복지가 구조적 취약성을 반복적으로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아르헨티나는 IMF 구제금융을 받은 뒤 왜 회복이 안 됐나요?
A. IMF가 요구한 긴축 조건이 오히려 경기 침체를 심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긴축 정책은 소비와 투자를 동시에 위축시켰고, 경제성장률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신용도가 바닥을 치면서 뱅크런이 발생하고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2006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정권에서 IMF 차관 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며 잠시 회복세를 보인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Q. 달러 페그제(태환 정책)가 왜 실패했나요?
A. 달러와 자국 통화를 1대1로 고정하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지만, 수출 경쟁력을 잃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아르헨티나의 주력 수출품인 농산물 가격이 국제 시장에서 비싸지면서 수출이 급감했고, 반대로 수입품 구매는 쉬워져 달러가 계속 해외로 유출됐습니다. 1차 산업 의존도가 높고 산업 다각화가 안 된 상태에서 환율만 고정한 처방이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결론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구나"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풍부한 자원과 높은 생활 수준을 갖췄음에도, 정치적 실책과 구조적 방만이 반복되면서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개발도상국으로 내려앉았습니다. 포퓰리즘만의 문제도 아니고, 군사 정권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 둘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누적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와 반대 방향을 걸어 선진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재정 정책이나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복지 공약들을 볼 때, 저는 아르헨티나의 초기 균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단기적으로 좋아 보이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구조적 문제를 남기는지, 아르헨티나의 사례가 그 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르헨티나 경제사가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반면교사로 읽히길 바랍니다.
